참된_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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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74Hunny: 루카쿠 해트트릭 했네 무링요 오면 캬 흑형들이 이제 그라운드를 다 패고다닌다
2013년 05월 19일에 web에서

#selfintro 남북대학생 교류 포럼에 참가함... 나는 중앙대학교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법학도이다. 전공이 법학이어서 공부할 분량이 방대하고 힘든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에 대한 애국심이 가슴 속에 있었고, 언제는 독도에 대해서 도발하는 일본의 실상을 알려주는 다큐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했으며, 통일이 오기를 갈망하는 나의 바람은 가슴 속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라는 곡을 들으며 북쪽의 친구들과 대화나누는 걸 상상했었고, 내가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어떠한 운명이 나에게 주어졌을지도 수없이 상상해보았다. 나는 지금 이 대한민국 땅에서 자라난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특별한 행운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내가 북한 땅에서 태어났다면 김일성, 김정일을 신으로 모시며 자유없는 각박하고 궁핍한 지옥같은 나라 에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됐을 거란 생각에 지금 내가 처한 처지에 대해서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만 갖혀 지내면 자기보다 더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나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지금 무척 힘들고 고생스럽게 생활하고 있지만 더욱더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2007년부터 2008년 말까지의 근 2년간의 군대생활은 그 과정을 다 겪고 난 지금 나에게 뜻깊은 경험을 안겨주었다. 비록 힘들고 고달팠고 외로웠지만 군대생활을 이겨내고 나니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아쉬운 게 너무 많았지만 후회 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이유모를 많은 존경심이 생겨버린 그 이름 “빌리 브란트”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왜냐하면 독일 통일 당시에 동방정책 등 통일의 기본을 닦아놓은 위대한 정치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의 전기를 사서 읽었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서 결국 EU를 대표하는 강대국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직 통합하는 부 분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대한민국은 그보다 더욱 심각한 북한과의 격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대비책과 사회통합의식이 견고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빌리 브란트” 이상 의 지도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고 그러한 사람이 반드시 우리 나라에 필요하다. 그러한 자질을 갖출 수 있는 자가 솔직히 내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후원자가 되고 싶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이 남북대학생 교류포럼에 지원하게 되었고, 상상만으로 설레였던 탈북대학생 들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근데 솔직히 내가 좀 특별한가보다. 사실 사법시험공부에 절박한 상황이지만 탈북대학생들을 만나는 기 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에 포럼을 신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러한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쏟는 사람을 찾기란 힘들었다. 다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자기 먹고 살 것도 바쁘며, 나 바쁜 사 람이야 라는 식으로 무관심을 갖기 일쑤인 그러한 상황이었다. 각자가 주어진 환경, 주어진 생각들로 인해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 고, 탈북대학생들의 친구가 되고 싶고, 도움을 주고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고자 즐겁게 약속장소 로 갔다. 탈북청년연합이라는 탈북대학생들의 단체로 포럼의 운영진들은 탈북대학생들이 맡고 있었다. 실제로 그 들을 만나보니 너무 반가웠었고, 그들이 씩씩하고 담대하게 생활하는 걸 보니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 탈북친구들을 하나씩 만나서 얘기도 자연스레 하고 그러니 겉모습은 역시 우리 민족이며 똑같았고, 단지 상황과 환경이 달랐을 뿐 너무나 잘 적응해서 생활해 나가는 것을 보니 너무도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 속에 갖고 있는 한과 아픔이 치유되길 바랬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한 과거를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그들이 탈북하면서 생과 사의 고비를 넘어서 극한의 상황에서 이 겨내어 이 곳 대한민국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그들에게 참 행운이 깃든 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줬을 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철원으로 같이 버스를 타고 갔다. 도착한 뒤 식당에서 매운탕을 함께 먹고 철의삼각전적지에서 가이드분 의 설명을 들으며 땅굴이 있는 곳, 통일전망대, 철원두루미관, 월정역, 옛 노동당사 건물 등을 차례로 둘 러 보았다. 땅굴에 들어갈 적에 버스에서 국경선이 바로 보이는 데 분단이라는 상황일 절로 실감이 났다. 백화성 씨 등 탈북대학생들이 모두 애증의 감정으로 이러한 상황을 느끼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그리 운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나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언젠가 통일이 되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텐데 그날을 꿈꾸면서 오늘 이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날들이 되길 바래야 지. 땅굴을 실제로 들어가 보니 고개를 숙여야만 이동할 수 있는 높이로 길게도 파져 있었다. 그곳에서 군생 활하는 육군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어렸을 때 가본 적이 있었던 통일전망대는 언제나 그렇듯 분단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장소였다. 멋진 산 등의 풍경과 함께 분단된 상황의 아이러니 속에서 탈북대학생들은 잠시나마 쉬기도 하고 해맑게 모처 럼의 여행을 즐기는 듯했다. 철원두루미관에서 박제된 두루미들을 보다가 버스에서 실제로 살아있는 두루미들도 보았다. 정말 청정 의 자연에서 두루미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좋은 볼거 리를 구경하였다. 그리운 마음에 북한 술을 사간 백화성 씨. 인내하고 기다리면 북한의 가족들과 함께 북한 술을 마실 행복 한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월정역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옛 노동당사 건물을 들려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당시 시대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그 노동당사 건물을 오로지 북한 자체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보존이 잘 안되 어 황량하게 건물 터만 남아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진 건물이 그런 식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또한 이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인간에게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도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러 유적지를 다 보고 버스로 철원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오래 막혀있었지만 그 시간을 이용해 탈북대 학생들과 레크리에이션 게임도 하면서 친근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서로 더 친밀해 지는 시간이었다. 곧 있으면 민족의 명절 추석이라 길이 오래 막혔지만 잘 도착했고, 정말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만난 친구들! 부디 추석 다들 잘 보내길 바라고, 항상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북한에 아직 남아 있는 가족들 꼭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담대 하게 생활해내길 기도한다.

URL: http://t.co/6GzqFGGC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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